쉰 셋, 로망들의 해후....

 

쉰 셋...

단풍빛 로망들이 바다를 마주했다.

가능하면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로 방을 냈다.

바다구름이 일어나는 모습을 더 잘 보게 하고팠다.

 

어둠이 내린 백사장 끝 기슭에 질펀한 판을 폈다

동서남북, 사는 곳이 다른 로망들이 모여 앉았다.

서른 해가 넘는 세월 속에

나이 만큼 느긋하게 영글은 모습의 얼굴들이지만,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차리기는 어럽지 않았다.

 

준비한 손길들 마음 씀씀이가 가슴에 와 닿고,

진행을 맡은 벗들은 막걸리 한 사발도 쭈욱 들이키지 못할 만큼

몸과 마음이 분망한데,

참으로 오랫만에 마주한 로망들의 눈빛들은

스치는 바닷바람결처럼 상큼하다.

 

부딫히는 술잔, 이름을 알 수 없는 술병들

이자리 저자리를 옮겨 앉으며

서로의 가슴을 열어 젖히는 짧은 순간의 옛이야기..

서로에게 서로로 남아 있는 지난 날,

저리도 아련한 기억을 어찌 묻어두고 지냈는가

 

쉰 세대 흥취에 알맞는 정겨운 유행가락..

지그재그로 장단을 뒤흔드는 자유로운 몸 놀림..

이제는 스스로 일어나고 앉음을 주저할 나이가 아니다.

홀로 너울거리면 어떠하고,

이끌리어 덩달거리면 어떠한가

 

마음의 끈을 풀어 늘어뜨리고

어께를 맞대고, 간간히 두 손을 잡아 끌고, 끌리고

엇박자 발자국으로, '쿵'하고 바닥을 밟아 친들 어떠리

어둠이 짙어가듯, 그렇게 시간이 가고

그렇게 추억은 쌓여 가는데...

 

늘 그렇듯이 가슴이 그득해지는 한켠에는

채워지지 않는 로망들의 눈망울이

먼 발치에서 빈 자리로 남는다.

꼭 오리라 생각했는데, 오지 않은 로망들...

 

시간을 채워가도, 어둠이 짙어져도

올만한 로망들이 끝내 오지 않아 아쉬운 맘이 일고,

빛나는 대리석, 노천 같은 바닥에 간이 의자를 펴고

쏴한 생맥에 닭다리를 더하는 2차의 시간

 

검은 빛 파도는 백사장 모래톱,

밝은 시간에 남기고 간 연인들의 발자국을 지우고.....

세상살이에 몸이 매인 벗들은 하나 둘

작별의 한마디 말을 사알짝 귀엣말로 남기고

밀려가는 파도 처럼 멀어져 간다

무엇이 저들을 저리도 내모는가

 

어둠이 가득한 시간, 13층 45평의 넓은 콘도 방 안

또 시작이다. 주고 받는 3차의 술잔...

옛 이야기, 아름다운 옛날들...

명정의 경지에 이른 벗들은 하나 둘..

순서없이 꿈나라로 간다

소파 위에, 맨 바닥에, 침대 위에...

쉰 세대, 불룩한 배에 홋이불도 걸치지 않고 실룩실룩..

 

그리고 또 푸른 새벽이 왔다.

아침바다 마알간 구름이 멀리 피어오르고

간간히 갯마을 뱃고동이 큰 숨을 내 쉰다.

부지런한 바다사람들이 푸른물살을 가르며

헤엄을 쳐 나간다.

 

쉰 셋,

단풍 빛 로망이 또 아침바다를 마주한다.

2011년, 거고 25회 해후의 로망들이...

부산의 친구들, 수고한 마음과 손길들 덕분에

푸른바다가 더욱 푸르다.

동백섬이 또렷하고,

백사장에 내리는 햇살이 환하고,

달맞이 고갯길이 저만치 손에 닿을 듯하다.

 

고마움과 간절한 마음이 가슴속에 응결되는 시간

이 방 저 방.. 벗들의 기척이 인다 

또 하루가 파아랗게 열리고,

이 하루가 또 기억의 방에 마알간 추억으로 자리를 잡는다

다시 못 올 이 해후,

다시 그리울 로망들...

 

2011년 6월 13일

한강 노들강변에서,

유차영 올립니다.